문구 없는 브랜드, 인벤타리오에 왜 나왔을까?

2025년 4월의 첫 주말. 코엑스에서 문구인들을 설레게 할 행사가 열렸어요.
바로 29CM와 포인트오브뷰가 주최한 문구 페어 ‘인벤타리오’.
여기에 이상한(?) 부스가 하나 등장했어요.
상품을 진열하는 매대 대신,
벽에 우체통처럼 생긴 빨간 종이 보관소가 붙어 있었죠.
물론 그냥 보관소는 아니에요.
‘내 생일에 맞는 문장’을 주는 보관소거든요.
생일을 적어 보관함에 넣으면 내 생일에 맞는 문장 카드가 랜덤으로 나와요.
입장이 시작되자마자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줄이 길게 늘어섰죠.
“진짜 내 상황에 맞는 문장이다”
“여기 용하다”
는 말이 들렸어요.
보관소에서 문장이 나오는 걸 찍어 가는 분들도 많았죠.
맞아요, 롱블랙이 만든 부스랍니다.
나오는 문장들도 롱블랙 노트에 있는 문장들이죠.
그런데 문구 행사에서 왜 이런 보관소를 만들었냐고요?
지금부터 그 과정을 소개할게요.
롱블랙이 인벤타리오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건 2024년 12월이었어요.
문구인들 사이에서 창의적이고 힙하다고 소문난 브랜드들이 모인 자리에, 롱블랙이 빠질 수 없잖아요?
사람들에게 롱블랙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좋은 글을 전달하는 경험을 만들고 싶었어요.
신청까진 수월했어요. 하지만 문제가 세 가지 있었죠.
문제 1. 팔 물건이 없다!
문구페어에 가면 대부분 물건을 파는 부스가 대부분이에요.
연필, 볼펜, 편지지, 다이어리…. 모두 물성이 있는 물건들이죠.
하지만 롱블랙은 없었어요. 멤버십(구독권)과 하루 한 편의 글이 전부였죠.
구독권을 티켓처럼 만들어 진열하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너무 딱딱하게 보일 것 같았어요.
고민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어요.
“문장 자체를 선물처럼 주는 건 어때요?”
1300개 넘는 노트에서 나온 영감을 주는 문장들.
이 문장들을 예쁘게 포장하고, 30일 구독권과 함께 선물처럼 주는 거죠.
문제 2. 문장을… 어떻게 나눠 주지?
다음으로 분류 작업이 필요했어요.
‘어떤 문장을 부스에 내놓을까?’
가장 많이 스크랩한 문장을 인기순으로 골라 직접 선택하도록 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수많은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하며 느꼈어요.
너무 많은 선택지를 주는 게 오히려 결정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걸요.
고객이 직접 문장을 고르는 것도 좋지만,
고객마다 랜덤한 문장을 주는 것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아침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처럼요.
그래서 고민 끝에 떠올린 게 바로 ‘생일’이었습니다.
왜 하필 생일이었냐고요?
고객에게 “물어봤을 때 가장 빨리 답이 나올 만한 질문”이었거든요.

"생일에 맞는 문장을 추천해 주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문장보관소."
이 정도면 110개의 부스 사이에서도 눈에 띄지 않겠어요?
문제 3. 공간이 좁다!
하지만 마지막 문제가 남았어요. 바로 부스가 너무 좁다는 것.
사실 디자인팀은 부스 크기를 확인하고 조금 숙연해졌답니다.
‘정말 이 정도 사이즈밖에 안 된다고?’ 가로 3m, 세로 2m.
성인 4명이 누우면 꽉 차는 수준이었죠. 매대 하나 놓기도 어려웠어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가면? 눈에 잘 띄지 않아요.
눈에 띄기 위해 앞쪽으로 나온다면? 사람들이 몰릴 때 동선이 꼬일 거예요.
디자인팀은 물론 마케팅팀까지 모여 집단지성을 총동원했어요.
공기가 안 통하는 회의실에서 한참 머리를 굴리다 이런 답이 나왔죠.
‘그냥 부스를 다 막아버리자!’
그렇게 가벽을 세워 보관소와 연결된 창구를 만들었어요.
안쪽 공간에선 사람이 앉아 생일에 맞는 문구를 주고요.
너무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으니 눈에도 잘 띄고, 지나가며 손쉽게 문장을 뽑아갈 수 있죠.
그렇게 나온 롱블랙의 문장 보관소,
생각보다 더 반응이 좋아서 깜짝 놀랐어요.


SNS에선 ‘기획력이 돋보이는 부스’라는 후기가 줄을 이었어요.
물론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내 상황에 딱 맞다. 너무 용하다”는 말은 물론, “저희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지능이라 조금 느릴 수 있다”는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참가자도 많았죠.
실제로 부스를 설계한 팀원들도, 직접 두 팔을 걷어붙이고 손님들을 맞이한 팀원들도 같은 마음이었어요. 롱블랙팀의 후기를 한번 들어볼까요?

5일간의 인벤타리오, 몸은 힘들었어도 마음만은 행복했던 날들이었어요.
롱블랙의 문장이 온라인에서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오래 남는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했거든요. 롱블랙의 이런 시도, 앞으로도 지켜봐 주실 거죠?
혹시 공간 디자인 디테일이 궁금하다면?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